워리어는 중국의 운동화로 시작했다. 1984년 배구 대표팀이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 그들이 신고 있던 신발이 워리어였고, 이 브랜드는 전국을 휩쓸었다 — 당시 월급이 약 30위안, 한 켤레 가격이 6~10위안이던 시절에도 워리어는 연간 8억 위안을 팔았다. 같은 캔버스화 계열의 페이웨(飞跃)는 1979년 쿵푸 영화의 대히트와 함께 성장해, 1,370만 켤레 중 550만 켤레를 수출했다.

1990년대는 혹독했다. 외국 브랜드가 들어왔고, 국영 고무신발 공장들이 하나둘 무너졌다. 2001년까지 상하이의 유명한 제일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안에 있던 워리어 매대는 판매 부진과 구식 디자인으로 철수했고 — 브랜드는 사실상 매대에서 죽어 있었다.

전환점은 외부에서 왔다. 2005년 프랑스인 파트리스 바스티앙(Patrice Bastian)이 소림사를 찾았다가 단순한 캔버스 실루엣에 반했고, 페이웨를 해외로 가져가 20위안짜리 신발을 50유로짜리 패션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올랜도 블룸, 엠마 왓슨 같은 유명인들이 중국산 캔버스화를 신은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싸구려 고무신발'이라는 낙인은 국내에서 무너졌다. 워리어의 이커머스 매출은 2014년 300만 위안에서 2016년 1억 위안을 넘어섰고, 2018년 궈차오(国潮, 애국 소비 트렌드)의 해가 찾아왔으며, 핀둬둬(拼多多) 한 채널만으로도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약 14억 위안을 기록했다 — 두 브랜드 합쳐 연간 거의 2천만 켤레다.

이후 브랜드들은 의도적으로 고급화를 밀어붙였다. 레트로 컬러, 워싱 가공, 스타워즈/마블/펩시 라이선스 협업, 상하이 신톈디 같은 랜드마크의 중급 매장, 그리고 수십 위안에서 1,000위안을 향하는 가격 사다리까지. 부활의 한계도 똑같이 뚜렷하다. 페이웨 상표권을 두고 서로 다른 네 개의 주체가 다투고 있고, 워리어는 유명 브랜드와 유사한 스타일로 반복적인 표절 의혹에 직면하며, 프리미엄 실험(999위안짜리 신발)은 신통치 않았다.

이커머스 매출은 300만 위안(2014년)에서 1억 위안(2016년)으로 상승했고, 핀둬둬 채널은 14억 위안을 창출했으며, 브랜드들은 2천만 켤레 이상을 판매한다

해외 유명인 열풍은 어떤 국내 캠페인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신발이 패션이라는 것을 입증하며 '싸구려 국산품'이라는 인식을 끝냈다

캔버스화의 평평하고 딱딱한 밑창, 가벼운 무게, 낮은 가격은 레트로 스트리트웨어와 헬스장 스쿼트 랙 모두에 맞았다 — 패션 이야기 아래에 진짜 실용성 이야기가 있었다

이커머스 플랫폼(티몰, 핀둬둬)은 쇼핑몰들이 브랜드를 내쫓은 뒤 거의 제로 비용으로 유통을 재구축했다

국영 공장의 유령 — 페이웨를 두고 다투는 네 명의 소유주, 얇은 연구개발 예산 — 이 가격의 상한을 정하고, 브랜드들이 추구하는 컨버스 수준의 마진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헤리티지 이름은 부활한다. 엔진은 패션과 이커머스 물결을 만나는 저렴하고 기능적인 제품이다. 그것이 없으면 노스탤지어는 구호에 불과하다

2020년대 중반까지 두 브랜드는 유행 여부라는 질문을 넘어섰다. 연간 2천만 켤레라는 물량은 59~200위안 소매가에서도 진짜 사업이라는 뜻이었다. 워리어는 2024년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回力1927(후이리1927) 서브 브랜드와 2021년 디자이너 프로그램을 출범시켰고, 페이웨를 둘러싼 상표권 혼란과 마진 상한은 업계의 계속되는 웃음거리로 남았다 — 노스탤지어가 공장 불을 다시 켰지만, 가족 싸움은 여전히 기계가 더 빨리 돌아가는 것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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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健身房新潮鞋:回力飞跃的品牌沉浮史 36氪 (36Kr / 精练GymSquare) · 36kr.com ·
  2. 一边传承,一边翻新:回力到底靠什么赢回年轻人? 网易新闻 (163) · 163.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