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바뀌었나
크라이슬러는 1979년 11억 2,600만 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1980년에는 그보다 더 큰 17억 1,0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는데, 이는 당시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연간 기업 손실이었다고 의회조사국(CRS)의 위기 관련 보고서는 전한다. 의회는 1979년 크라이슬러 법인 대출 보증법을 통과시켜 최대 15억 달러의 연방 대출 보증을 승인했으며, 이 법은 1980년 1월에 서명되어 발효되었다. 크라이슬러는 결국 그중 12억 달러를 인출했다.
CEO 리 아이아코카는 대출 보증과 함께 대규모 구조조정을 병행했다. 그는 상징적으로 연봉 1달러를 받았고, 1979년 전미자동차노조(UAW)로부터 4억 6,250만 달러의 임금 양보를 이끌어냈으며, 1981년에는 추가로 6억 7,300만 달러 규모의 패키지를 이끌어냈다. 또한 1978년부터 1983년 사이에 7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줄였다. 크라이슬러는 제품 회복을 1981년에 출시된 전륜구동 K-car 플랫폼에 걸었는데, 이는 유가 상승 속에서 경쟁에 실패했던 더 크고 비효율적인 모델들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크라이슬러는 1982년 1억 7,010만 달러의 순이익으로 흑자로 돌아섰는데, 이는 5년 만의 첫 흑자였다. 그리고 그해 6월과 8월에 정부 보증 대출을 상환했다. 1983년까지 크라이슬러는 영업이익 9억 2,740만 달러에 순이익 7억 90만 달러를 보고했으며, 1983년 8월에는 남은 대출 잔액을 전액 상환했는데, 이는 1990년 만기일보다 7년 앞선 것이었다.
무엇을 달성했나
CEO는 임금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연봉 1달러를 받았고, K-car 플랫폼에 승부를 걸었으며, 정부 대출을 7년 앞당겨 상환하여 구제금융을 1983년까지 7억 90만 달러의 이익으로 바꾸어 놓았다.
왜 통했나
연봉 1달러를 받은 것은 아이아코카가 UAW에 임금 양보를 요구하고 다른 모든 수준에서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해 주었다. 그가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고통을 눈에 보이게 함께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품 회복을 K-car라는 하나의 새 플랫폼에 거는 것은, 축소된 크라이슬러의 엔지니어링 예산을 기존 모델 라인업 전반에 분산시키지 않고 단일 승부에 집중시켰다.
흑자로 돌아선 뒤 대출을 수년 앞당겨 상환한 것은, 회사를 10년간 규정할 수도 있었던 구제금융을 종결된 장으로 바꾸어, 대출 기관과 고객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켰다.
기업이 생존을 위해 외부의 구제를 필요로 할 때, 최고 경영진의 눈에 보이는 희생과 하나의 집중된 제품 승부를 함께 결합하면 그 대출을 영구적인 의존이 아닌 짧은 장으로 바꿀 수 있다.
그 후
크라이슬러는 1980년 17억 1,000만 달러의 손실에서 1983년까지 7억 90만 달러의 순이익을 보고했으며, 그해 8월 15억 달러의 연방 대출 보증을 예정보다 7년 앞당겨 상환했다고 당시 보도와 이 프로그램에 관한 의회조사국의 설명은 전한다. 크라이슬러 구제금융은 영구적인 보조금이 되지 않고 이자와 함께 전액 상환된 미국 정부 대출 보증 프로그램의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아이아코카의 회생은 그를 1980년대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 기업 인물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Chrysler Corporation Loan Guarantee Act of 1979: Background, Provisions, and Cost 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 · everycrsreport.com
- Chrysler Corporation Loan Guarantee Act of 1979 (Public Law 96-185) GovInfo, US Government Publishing Office · govinfo.gov
- Chrysler to repay federal loan guarantees seven years early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 csmonit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