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바뀌었나
중국 최초의 자동차 합작사 중 하나였던 광저우 푸조는 서서히 붕괴했다. 1996년까지 공장 주변 들판에는 수천 대의 팔리지 않은 차량이 쌓여 있었고, 합작사는 미지급 부품 대금으로 푸조에 약 5억 위안을 빚지고 있었으며 도시에 대한 채무는 그보다 더 많았다. 국가 계획 당국이 광저우에 인수를 압박한 뒤, 푸조는 지분을 1프랑에 매각했고 합작사는 1997년 10월 문을 닫았다.
도시는 자산을 보유하고 광저우자동차그룹(GAGC)으로 재편했다. 중앙 계획 당국은 오펠과의 제휴를 거부하고 광저우를 혼다 쪽으로 이끌었는데, 혼다는 이미 이 도시에서 오토바이 합작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1998년 5월 13일 GAGC와 혼다는 50:50 자동차 합작사를 설립했으며 — 푸조와 달리 대등한 파트너십이었다 — 개조된 옛 푸조 공장은 1999년 6세대 어코드와 오디세이 MPV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어코드는 중국을 대표하는 비즈니스 세단 중 하나가 되었다. 10년 후 GAC의 승용차 사업은 수익 기계였다. 2010년 상반기 캠리의 판매량은 15.2% 증가한 81,337대였고 어코드는 중고급 세단 시장 정상 자리를 지켰으며, 원가 통제로 매출총이익률이 높아졌다. 2010년 8월 그룹은 H주를 발행하고 자회사 덴웨이를 단일 구조조정 상장으로 흡수해 오늘날의 상장 GAC를 만들었다.
무엇을 이루었나
2010년까지 어코드와 캠리는 중국 중고급 세단 시장을 이끌었고, GAC는 2010년 8월 덴웨이를 흡수한 H주 상장을 완료했다.
왜 성공했나
도시는 공장이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라이선스, 부지, 인력을 유지함으로써 다음 파트너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고 1년 안에 생산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 번에 한 모델(처음에는 어코드)을 두는 50:50 구조는 푸조처럼 자본과 경영의 관심을 값싸고 진부한 제품들에 분산시키지 않고 집중시켰다.
혼다는 현행 세대 차량과 자체 딜러 노하우를 가지고 왔기에, 합작사는 택시와 관용차 잔여물이 아니라 관리들이 실제로 사고 싶어 하는 제품을 팔아 완판할 수 있었다.
중앙 계획 당국의 검증된 브랜드 고집은 중요했다. 오펠은 전통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부되었고, 어코드의 프리미엄 이미지가 바로 2004년 도요타와 함께 이 합작 모델을 모방할 가치가 있게 만든 것이었다.
실패한 합작사는 막다른 길이 아니다. 현지 소유주가 라이선스, 토지, 인력을 유지하고 이를 대등한 50:50 구조 아래 더 나은 파트너에게 투입한다면 말이다.
그 후
GAC는 일본 합작사들을 발판으로 중국 6위 국내 자동차 제조사가 되었지만, 2011년 일본 대지진은 그 집중의 위험을 드러냈다. 2011년 상반기 순이익은 부품 공급 차질로 26% 감소한 17억 2천만 위안이었고, 쩡칭훙 사장은 여전히 2012년 그룹 판매가 약 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룹은 이후 혼다 합작사가 세운 기반 위에 피아트-크라이슬러, 미쓰비시, 그리고 자체 트럼프치와 아이온 브랜드를 추가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The Big Read – GAC (2/4) – The road to success CarNewsChina · carnewschina.com ·
- Guangzhou Automobile Group Co., Ltd. 2010 Interim Report HKEXnews (Guangzhou Automobile Group) · www1.hkexnews.hk ·
- Guangzhou Auto sees 2012 China sales up 5 percent (archive) Reuters · web.archive.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