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aus-Michael Kuehne는 1890년 브레멘의 포워더 공동 창업자인 August Kuehne의 손자였다. 그는 1958년에 입사했고, 1963년 26세에 개인 책임 파트너가 되었으며, 1966년 포워딩 사업이 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CEO 자리에 올랐고, 1969년에는 본사를 스위스로 옮겼다.

1970년대 내내 그는 함부르크 상인의 꿈인 자신만의 선단을 좇아 파나마 법인을 통해 유조선을 용선했다. 석유 위기로 운임이 폭락했다. 그의 배들은 계속 손실을 냈고, 부채는 약 1억 마르크에 달했으며, 포워딩 회사 자체가 은행들의 담보로 제공되었다. 1978년부터 그는 배들을 파산적 가격에 팔았다. 1973년 6,000만 마르크에 매입한 유조선 Mercedes는 3,000만 마르크에 팔렸다. 1980년 무렵 그룹은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다.

1981년, 그의 아버지 Alfred가 사망한 해에 Kuehne는 회사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Kuehne + Nagel의 50퍼센트를 영국 대기업 Lonrho에 9,000만 마르크에 매각했고, 포워딩 사업은 핵심 사업에 다시 집중되었다. 1992년 그는 그 절반을 3억 4,000만 마르크에 되샀고, 1994년 Kuehne + Nagel International AG는 Kuehne가 Kuehne Holding을 통해 55.8퍼센트를 보유한 채 상장되었다.

1981년 9,000만 마르크에 매각한 50퍼센트를 1992년 3억 4,000만 마르크에 되샀다. 1994년 기업공개 후 그는 그룹의 55.8퍼센트를 보유하게 되었다.

1966년 주식회사로의 전환은 지배구조를 가족 파트너십과 분리시켰고, 이는 나중에 회사를 해산하지 않고도 지분을 매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Kuehne는 운임 폭락이 한 달 더 이어질 때마다 구멍이 더 깊어졌기 때문에, 최악의 시점에 선단을 청산했다. 배들을 반값에 팔았던 것이다.

운영 회사가 아니라 정확히 절반을 매각함으로써, 11년간의 Lonrho 공동 소유 기간 동안 경영진과 브랜드를 온전히 유지했다.

포워더의 핵심, 즉 자산 경량형 화물 포워딩만이 저당 잡힐 가치가 있었고, 지켜야 할 가치가 있었다.

가족 기업은 소유주가 자신의 실수를 값매길 수 있을 때에만 살아남는다. Kuehne는 배에 대한 꿈을 위해 사업을 저당 잡혔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절반을 팔았으며, 그 절반을 3.8배의 가격에 되샀다.

Kuehne + Nagel은 1994년 창업자의 손자가 Kuehne Holding을 통해 55.8퍼센트를 보유한 채 상장되었고, 세계 최대 포워더 중 하나로 성장했다. Kuehne는 자신의 방식으로 해운업에 복귀했다. 2008년부터 Albert Ballin 컨소시엄을 통해 Hapag-Lloyd 지분을 쌓았고, 2020년까지 Kuehne Holding은 이 컨테이너 선사의 30퍼센트를 보유했다. 이는 Covid 위기 속에서도 장기적이라고 보유사가 설명했다. 1981년에 받은 9,000만 마르크에 대비한 1992년의 되사기 가격 3억 4,000만 마르크는 구조의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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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Köpfe: Klaus-Michael Kühne (chronology) WirtschaftsWoche · web.archive.org ·
  2. Unternehmer: Dunkler Drang Der Spiegel 7/1981 · spiegel.de ·
  3. Kühne ups stake in Hapag-Lloyd Splash247 · splash247.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