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는 한국의 2위 재벌이었다. 1998년 말 기준 국내 계열사 40개, 해외 계열사 396개를 두었고, 1998년 7월 포춘 500대 기업에서 18위에 올랐다. 창업자 김우중은 '먼저 키우고, 이윤은 나중에 걱정한다'는 하나의 생각으로 회사를 운영했고, 그 재원은 갈수록 커지는 차입이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대우의 답은 성장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키우는 것이었다.

1999년에 이르러 셈이 무너졌다. 3월에 부채비율이 400%를 넘었고, 1998년 말에는 기업어음 자금 조달이 얼어붙었으며, 7월에 10조 1300억 원어치의 주식과 부동산을 담보로 내건 자구책도 시장을 설득하지 못했다. 1999년 7월 19일 정부가 긴급 대책을 발표했고, 8월 26일 채권단은 12개 핵심 기업(대우,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등)을 워크아웃에 편입하기로 의결했으며, 11월 1일 김우중과 14개 계열사 사장이 함께 사퇴했다.

최종 실사 결과 워크아웃 12개 계열사의 부채는 88조 99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계열사들은 매각되거나 청산되었고, 대우자동차는 결국 GM으로 넘어갔으며, 대우라는 이름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김우중은 2000년 해외로 도피했다가 2005년 귀국했고, 약 40조 원 규모의 분식회계와 관련된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우는 죽지 않는다'는 신화가 무너졌다. 실사에서 12개 핵심 계열사의 부채가 88조 9900억 원으로 드러났고, 재벌은 해체되었다

위기 속 차입은 거울 전략이다. 건전한 기업은 생존을 값싸게 조달하지만, 가장 많이 빚진 차입자는 바로 대출자들이 가장 먼저 자금을 끊는 대상이다.

성장 우선 경영은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통했지만, 회사를 계속되는 신규 부채에 가치가 좌우되는 존재로 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첫 자금 경색이 곧 존립의 위기가 되었다.

자구책은 신뢰에서 실패했다. 채권단이 이미 장부를 의심하는 상황에서 자산을 담보로 내거는 것은 통할 수 없다. 시장은 그것을 담보가 아니라 확인으로 받아들였다.

부채로 키운 성장은 내일의 현금이 어제의 차입을 덮는다는 약속이다. 경제가 돌아서면 가장 많이 빚진 주체가 가장 먼저 벽에 몰린다. 규모는 안전이 아니다

이 붕괴는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를 바꾸어 놓았다. '대우는 죽지 않는다'는 재무상태표 위험에 대한 교과서적 경고가 되었고, 대우를 위해 만들어진 워크아웃 제도는 이후 위기에서 다시 쓰였다. 그룹의 계열사들은 이후 여러 해에 걸쳐 분할되거나 매각되거나 청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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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대우그룹 채권단회의. 대우그룹 12개사 워크아웃 결정 (1999.8.26) 국사편찬위원회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 db.history.go.kr ·
  2. 김우중 회장, 계열사 사장단 함께 사퇴 중앙일보 (JoongAng Ilbo) · joongang.co.kr ·
  3. [어제의 오늘]1999년 대우그룹 워크아웃 경향신문 (Kyunghyang Shinmun) · kha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