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는 19세기부터 영국 농부와 승마인, 왕실을 위해 튼튼한 고무 부츠를 만들어 왔지만, 2005년 파산했다. 2006년 7월, Ugg Australia 출신의 베테랑 마이클 토드는 케이트 모스가 글로스턴베리의 진흙을 헤치며 헌터 웰리를 신고 있는 파파라치 사진을 발견했다.

토드는 새로 취임한 최고경영자 피터 멀런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부츠가 곧 답답한 이미지를 벗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6개월 후 멀런은 토드를 최고마케팅책임자로 고용해 헌터를 재창조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헌터는 멀런과 펜틀랜드 그룹이 보유한 49% 지분을 포함한 컨소시엄에 막 인수된 상태였다.

구조 작업은 처음에는 화려하지 않았다. 컨소시엄은 생산을 스코틀랜드에서 중국으로 옮겨 비용을 절감했고, 부츠 한 켤레의 소매가를 20% 올려 115달러로 인상했으며, 새로운 색상과 안감, 질감을 더한 버전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토드는 헌터를 더 젊고 패션에 민감한 고객층으로 밀어붙였다.

2007년 그는 존 루이스의 바이어를 설득해 연례 음악 축제가 열리는 레딩 매장에 두 가지 스타일을 입점시켰다. 부츠는 빠르게 팔렸고, 헌터는 25가지 색상의 30개 재고관리단위(SKU)로 확대된 뒤 버그도프 굿먼, 블루밍데일스 및 미국 내 400여 개 판매점으로 퍼졌다.

헌터는 농장과 왕실의 신발에서 패션 액세서리로 거듭났으며, 미국 매출이 사업의 30%에 달하고 400개 이상 판매점에 유통되었다.

셀러브리티의 순간이 브랜드에 촌스러운 이미지를 벗어날 기회를 주었다.

헤리티지 스토리는 헌터에 새로운 경쟁자가 따라 할 수 없는 진정성을 부여했다.

비용을 줄이고 가격을 올리면서 브랜드는 하향이 아니라 상향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음악 축제 매장에서 시작한 것이 정확한 문화적 고객층을 형성했다.

헤리티지 부활은 종종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문화적 순간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포착하고 의도적으로 확장하는 일이다.

헌터는 2010년대 내내 웰링턴을 패션으로 만드는 흐름을 타고 의류와 액세서리로 확장하며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럭셔리 포지셔닝은 결국 트렌드가 식고 부채가 늘면서 취약하게 만들었고, 2020년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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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A Brand Re-Booted Forbes · forbes.com ·
  2. These boots were made for strutting the catwalk at London fashion week The Guardian · theguardi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