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코만은 1917년 노다의 양조 가문들이 합병하여 탄생했으며, 1935년생인 모기 유자부로는 그중 한 가문의 후손이었다. 사업의 경제성은 냉혹했다. 간장은 일상 필수품이므로 수요는 인구와 함께만 늘어난다. 1950년대 후반 미국 시장에서 일하면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한 모기는 회사 매출의 약 80%가 간장에서 나왔고, 정체된 내수 수요는 '우리에게 위기'였다고 회고했다.

회사는 두 가지 전략으로 답했다. 국내에서 다각화하고, 간장을 세계로 내보내는 것이었다. 모기는 두 번째를 주창했다. 그는 미국 공장 건설을 제안했고, 이 공장은 1973년 위스콘신에 문을 열었다. 미국에서 제조하는 최초의 일본 식품회사였다. 석유 파동으로 2년간 적자를 냈지만 공장은 4년째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방식은 현지화였다. 요리사들을 고용해 간장을 현지 요리법에 녹여내고, 그들을 신문에 보내며, 일본 수입품이 아니라 '만능 조미료'로 팔았다.

모기는 1995년 사장 겸 최고경영자로 정상에 올라 최고경영진 자리에서 세계화를 이끌었다. 해외 간장 매출은 4반세기 동안 매년 거의 10%씩 성장했고, 2009년까지 그룹은 연간 40억 달러 이상의 식품을 판매했으며, 해외 사업이 매출의 30%에 불과하면서도 영업이익의 55%를 기여했다. 2014 회계연도에는 80%까지 올랐다. 그의 또 다른 개혁은 조용히 급진적이었다. 2004년 이후 기코만의 사장들은 창업 가문 밖에서 나왔다.

해외 간장 매출은 25년 동안 매년 거의 10%씩 성장했고, 그룹 매출은 40억 달러를 넘었으며, 2014 회계연도까지 해외 사업이 영업이익의 80%를 냈다.

간장에 대한 국내 수요는 일본 인구를 따라갔으므로 국내 성장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해외 진출만이 복리 성장의 길이었다.

모기는 학생 시절 미국 쇼핑객들이 시식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를 통해 이 제품이 민족적 틈새가 아닌 보편적 조미료라는 확신을 얻었다.

현지 생산은 이전 아시아 식품 수출을 좌절시켰던 수입 비용과 불신을 없앴고, 현지화 마케팅은 간장을 요리의 필수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어떤 위기도 강요하기 전에 외부인 경영을 제도화하여 가문 소유와 전문 경영의 균형을 유지했다.

주력 상품의 내수 시장이 성장을 멈출 때는 가문의 장기적 안목이 보답한다. 브랜드보다 카테고리를 먼저 팔고, 현지 요리에 적응하며, 강할 때 승계를 가문 밖으로 옮겨라.

기코만은 세계 최대의 자연 양조 간장 제조사가 되었고, 가장 인지도 높은 일본 브랜드 중 하나로 꼽혔으며, 2009년 인수로 계속 확장하기 위해 지주회사 구조를 도입했다. 모기는 80대 후반까지 회장 겸 명예 최고경영자로 재직했으며, 창업 가문 밖에서 발탁된 사장들이 운영을 맡았다. 이는 일본 가족 기업에서 드문 승계 설계였다. 간장은 이제 10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며, 2000년대 이후 일본 음식의 세계적 붐이 이 카테고리의 성장을 이어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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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Sauce of success: How Yuzaburo Mogi of Kikkoman helped turn soy sauce into a global product The Economist · web.archive.org ·
  2. Interview series: Mr. Yuzaburo Mogi, Honorary CEO and Chairman of the Board, Kikkoman Corporation Foreign Press Center Japan · fpcj.j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