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바뀌었나
본 존스가 이끄는 할리데이비슨 임원 13명은 1981년 6월 8,150만 달러 규모의 차입매수(LBO)로 AMF로부터 회사를 인수했다. 당시 일본 제조사들이 더 잘 만들고 더 저렴한 오토바이로 대형 오토바이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었고, 1981년까지 할리데이비슨의 초대형 오토바이 부문 점유율은 약 80%에서 약 20%로 떨어져 있었다. 부채가 많은 신생 회사는 매출이 1980년 2억 8,900만 달러에서 약 2억 달러로 급감하면서 1982년 2,5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고 당시 보도는 전했다.
할리데이비슨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청원했고, ITC는 관세 구제를 권고했으며,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4월 수입 대형 오토바이에 5년간 매년 인하되는 관세를 부과했다. 관세율은 45%에서 시작해 5년 차에 10%까지 단계적으로 내려갔다. 할리데이비슨은 보호된 기간을 안주하는 데 쓰지 않고 제조를 재건하는 데 썼다. 펜실베이니아주 요크 공장은 '필요할 때 자재를' 방식의 적시(JIT) 재고 시스템을 도입해 연간 약 2,500만 달러의 안전 재고를 없앴고, 일본 경쟁사와의 품질 격차를 좁히기 위해 통계적 공정 관리도 함께 도입했다.
재건된 사업은 관세의 5년 일정보다 훨씬 앞서 흑자로 돌아섰다. 할리데이비슨은 1986년까지 매출 2억 9,500만 달러에 430만 달러의 이익을 보고했으며, 같은 해 주식 공모로 2,000만 달러, 후순위 채권으로 7,000만 달러를 조달했다. 1987년 3월 할리데이비슨은 자사의 관세 보호를 조기 종료해 달라고 청원했고, 레이건은 1987년 10월 예정보다 1년 앞서 관세를 종료했다.
무엇을 이루었나
일시적 관세가 준 숨통을 이용해 적시 재고 방식으로 공장을 재건하고 2,500만 달러의 안전 재고를 줄인 뒤, 관세를 조기 종료해 달라고 요청했다.
왜 통했나
관세 구제를 얻은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품질과 재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시간을 벌어줄 뿐이었고, 할리데이비슨은 그 시간을 보호막 뒤에서 가격을 올리는 데가 아니라 공장을 재건하는 데 썼다.
적시 재고는 안전 재고에 묶여 있던 자본을 풀어주었고, 그 자본으로 일본 경쟁사와의 품질 격차를 좁히는 데 필요한 통계적 공정 관리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자사의 관세를 1년 앞서 종료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딜러와 규제 당국에 턴어라운드가 실제였다는 신호를 보냈고, 부채로 인수하면서 잃었던 신뢰를 다시 쌓았다.
무역 보호 같은 숨통은 실제로 손실을 내던 사업을 재건하는 데 쓸 때만 가치가 있다. 필요 없어졌을 때 조기 종료를 요청하는 것이 바로 그 해결이 통했다는 증거다.
그 후
할리데이비슨은 1981년 AMF로부터 부채가 많은 인수로 인해 1982년 2,500만 달러의 손실을 낸 뒤, 1986년까지 매출 2억 9,500만 달러에 430만 달러의 이익을 냈다. 자사의 관세 보호를 1년 앞서 종료해 달라는 요청은 1987년 10월 레이건의 승인을 받았고, 이는 보호받는 산업이 무역 구제를 영구적 방패가 아니라 스스로를 고치는 기한으로 활용한 사례로 널리 인용되었다. 요크 공장에서 도입한 적시 재고와 통계적 공정 관리 방식은 그 후 수십 년간 할리데이비슨 제조의 핵심으로 남았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Harley-Davidson, Inc. — company history Reference for Business (International Directory of Company Histories) · referenceforbusiness.com
- Memorandum on Heavyweight Motorcycle Imports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UC Santa Barbara · presidency.ucsb.edu
- Harley-Davidson lean manufacturing history Strategos Inc. · strategosin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