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바뀌었나
존 갈리아노는 패션계에서 가장 유명한 추방자였다. 2011년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크리스찬 디올에서 해고된 그는 파슨스,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스튜디오에서 복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2014년 10월, 2002년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과반 지분을 인수했던 온리 더 브레이브의 회장 렌조 로소는 그를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로소는 이를 자신의 '용감하고 예측 불가능한 선택' 중 하나이자 '정의와 시간을 초월한 재능'이라고 불렀다.
이 조합은 모순처럼 보였다. 1988년 앤트워프 식스 중 한 명이 설립한 마르지엘라는 익명성, 지적 해체, 그리고 발견된 오브제로 만든 옷의 하우스였다. 창립자는 2009년 떠났고 브랜드는 수년간 이름 있는 리더 없이 운영되었다. 갈리아노는 낭만주의와 스펙터클이었으며, 디올에서 의상을 입고 인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발표 일주일 만에 업무를 시작했고, 데뷔는 1월 쿠튀르 시즌으로 예정되었으며, 하우스의 아르티자날 라인을 자신의 무대로 부활시켰다.
이 승부수는 상업적으로 성과를 냈다. OTB에 따르면, 갈리아노의 첫 5년 동안 브랜드는 2018년 매출을 2억 유로로 두 배로 늘렸다. 여전히 수익성은 없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성장했다. 갈리아노는 하우스를 기성복과 아르티자날을 넘어 마진이 더 높은 카테고리인 액세서리와 향수로 확장했다. 타비 부츠, 레플리카 스니커즈, 그리고 푹신한 글램 슬램 백이 전체 매출의 60%를 견인했으며, OTB는 2024년 4억 유로 매출 목표를 향해 새로운 리테일, 화장품, 직접 소비자 대상 이커머스로 그를 뒷받침했다.
무엇을 달성했나
2018년까지 5년 만에 매출이 2억 유로로 두 배가 되었고, 타비 부츠, 레플리카 스니커즈, 글램 슬램 백이 매출의 60%를 견인했으며, 2024년 목표는 4억 유로였다.
왜 통했나
갈리아노의 추방 상태는 그를 영입하는 비용을 낮추고 독점적으로 만들었다. 어떤 경쟁자도 그를 건드릴 수 없거나 건드리려 하지 않았기에, OTB는 시장 최저점에서 검증된 그랑 쿠튀리에를 확보할 수 있었다.
마르탱 마르지엘라가 2009년 떠난 후 이 하우스에는 창립자도, 이름 있는 스타도 없었다. 얼굴 없는 컬트 브랜드였고, 이는 바로 유명 디자이너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결정은 로소의 것이었다. OTB의 창립자이자 회장으로서 그는 위원회나 상장 기업이라면 거부했을 평판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었다.
갈리아노의 상업적 본능(가방, 스니커즈, 향수)은 하우스의 코드를 희석하기보다 수익화했다. 타비 부츠는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히트 엔진이 되었다.
부활을 노리는 브랜드는 금지된 스타가 브랜드보다 스타를 더 필요로 할 수 있다. 평판 리스크를 감수하는 오너는 최저점에 있는 세계적 수준의 재능을 확보한다. 하우스 DNA와의 대비는 결점이 아니라 특징이다.
그 후
OTB는 갈리아노의 계약을 갱신했으며, 대변인은 이를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고, 4억 유로 매출 목표를 향한 투자를 계속했다. 새로운 리테일 공간, 화장품 진출, 직접 소비자 대상 이커머스가 포함되었다. 이 임명은 패션계의 취소와 복귀 사이클의 조건도 다시 썼다. 갈리아노의 마르지엘라는 스캔들 시대의 경력이 헤리티지 하우스 안에서 재건된 표준 사례로 인용되었고, 브랜드의 성장은 재능에 베팅하는 오너 모델을 입증했다.
근거 확인하기
출처
- John Galliano Named Creative Director of Maison Martin Margiela The New York Times (On the Runway) · archive.nytimes.com ·
- John Galliano renews contract at Maison Margiela as brand's revenues double Vogue Business · vogu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