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공격이 빅토리녹스의 가장 중요한 단일 판매 경로를 파괴했을 당시, 이 회사는 창립 117년이었고 여전히 가족 경영이었다. 주머니칼은 공항과 항공편의 면세 필수품이었지만, 날카로운 물건이 기내에서 금지되자 주문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다. 창업자 카를 엘제너의 증손자인 카를 엘제너 주니어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사업의 40% 이상을 잃었습니다. 공항들이 방대한 양의 칼을 우리에게 돌려보냈습니다.'

대응은 당시의 통념과 정반대였다. 빅토리녹스는 정리해고를 하지 않았고 — 한 번도 누구도 해고한 적이 없었다 — 대신 직원들을 중부 스위스의 다른 회사들에 '대여'했다. 위기 전에 조용히 키워온 사업군에 더욱 집중했다. 가정용 및 전문가용 칼붙이, 스위스 아미 시계(1989년부터), 여행용 가방(1999년부터)이었는데, 마지막은 여행 시장이 돌아올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베팅이었다.

승계는 충격 직전에 마련되어 있었다. 2000년 10월 가족은 회사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빅토리녹스 재단을 설립했고, 카를 엘제너 주니어는 2007년 아버지로부터 CEO와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그때까지 위기는 지나갔다. 빅토리녹스는 2005년 경쟁사 벵거를 인수해 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유일한 공급자가 되었고, 이바흐 공장은 여전히 하루 약 12만 자루의 칼을 출하한다.

빅토리녹스는 사업의 40% 이상을 잃은 위기에서 회복했고, 2013년까지 연간 2,600만 자루의 칼을 출하했으며, 직원 2,000명 전원을 유지했다 — 131년 동안 단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수요 손실은 공항 소매라는 한 경로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칼 거래가 폭락해도 회사의 핵심 역량은 여전히 가치가 있었다.

한 세기 동안 비축해온 유비무환의 저축 덕분에, 회사는 직원을 해고하는 대신 유휴 인력을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었다.

위기 전에 시계와 가방으로 다각화한 덕분에, 회사는 스위스 제조를 포기하지 않고도 생산 능력을 옮길 곳을 갖게 되었다.

2000년에 설립된 재단 소유 구조는 회사 역사상 최악의 해에 회사를 매각하거나 해외에서 마진을 추구하라는 압력을 없애주었다.

가족 기업의 적립금과 문화는 감상이 아니라 전략이다. 빅토리녹스는 경쟁사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동안 이웃 회사들에 직원을 대여하고 부수 사업을 밀어붙여 40%의 수요 충격을 흡수했다.

빅토리녹스는 2005년 벵거 브랜드를 흡수했고, 2007년 카를 엘제너 주니어에게 CEO와 회장직을 넘겼으며, 여행용 장비, 칼붙이, 향수로 매출을 재건했다. 2013년까지 하루 12만 자루의 칼을 출하했고, 2014년에는 수년간 라이선스로 운영해온 TRG 여행용 장비 사업을 통합했다. 회사는 여전히 약 2,000명을 고용하고, 이익을 회사 내부에 유보하며, 최고경영자에게 최저임금 근로자의 약 6배에 해당하는 보수를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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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How The Swiss Army Knife Survived 9/11 Worldcrunch · web.archive.org ·
  2. Er machte Victorinox zur Weltmarke Tages-Anzeiger · tagesanzeiger.ch ·
  3. Carl Elsener Jr. The New York Times · web.archive.org ·